“아빠, 없으면 안 돼요.” “부장님 없으면 보고서가 안 나가요.” “여보, 이거 당신이 해야 돌아가잖아.” 예전엔 진짜 **내가 없으면 세상이 멈출 것 같았다.**
그런데 지금은?
“아빠, 잠깐만. 지금 바빠.” “퇴직하셨으면 푹 쉬세요.” “아, 나 혼자도 할 수 있어요.”
**언제부턴가 내가 사라져도 아무 일도 안 생긴다.** 처음엔 좀 허무했고, 요즘은 그냥 웃긴다.
회사에서 빠졌을 때
정년 1년 앞두고 명예퇴직을 했다. 회의에서 빠지면 업무가 꼬이고, 내가 없으면 보고서가 누락되던 그곳. 떠난 뒤 한 달쯤 지나 찾아가봤다.
“어, 부장님~ 잘 지내시죠?” 환영은 했지만, 눈빛엔 어색함이 가득했다. 보고서도 잘 돌아가고, 팀도 잘 굴러가고 있었다.
그제야 실감했다. ‘아, 나 아니어도 잘 돌아가는구나.’ 회사라는 건 그렇게 만들어졌고, 나는 그냥 **기억 속 기능 중 하나**였구나.
가정에서도 마찬가지
예전엔 내가 돌아오면 온 가족이 반겼다. 문 열리면 “아빠 왔다~!” 하고 뛰어오던 아이들. 지금은 집에 있어도 “아빠 계셨네?” 심지어 “아빠, 오늘 안 나가요?” 묻는다.
심지어 밥상에서도 내 자리는 점점 끝으로 밀린다. TV 리모컨은 아내 차지, 메뉴 결정권은 딸 차지, 나는 그냥 조용히 먹고 조용히 설거지 담당.
존재감이 사라지는 느낌?
예전엔 뭘 하든 “당신 없이는 안 돼”라는 말을 들었다. 그런데 이젠 “아빠, 그냥 쉬세요.” “그건 이제 우리가 해요.” 도움이 아니라 ‘간섭’이 되어버린 내 조언들.
처음엔 서운했다. “나 이렇게 잉여처럼 살아도 되나?” 싶었다. 그런데 어느 순간 생각이 바뀌었다.
그래, 이게 자연스러운 거다
내가 없으면 안 됐던 이유는 **그들이 아직 익숙하지 않았던 시기였기 때문**이고, 지금은 그들이 잘해나가고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.
‘나는 한 발 물러섰지만, 그 빈자리는 누군가 채우고 있다’ 이게 인생이더라.
요즘은 작게 웃긴다
이제는 가족에게 “아빠가 해줄게”라는 말보다 “너 잘하고 있네”라는 말을 더 자주 한다. TV 리모컨도, 주방도, 대화의 중심도 넘겨주었다.
그리고 구석 자리에서 조용히 귤 하나 까먹으며 생각한다. “그래도 한때는 나 없으면 안 됐던 사람이었어.” 그걸로 충분하다.
마무리하며
존재감이 줄어드는 건 어쩌면 내가 잘 살아왔다는 증거인지도 모른다. 모두가 나 없이도 잘 살아가고 있다는 건, 그동안 내가 제법 괜찮게 버텨왔다는 뜻이다.
예전엔 나 없으면 안 된다더니, 지금은 다들 잘 살아간다. 그래도 괜찮다. **이제는 내가 나를 챙기면 되는 시간**이니까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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