“오늘 하루 뭐 했지?” 저녁이 되어 시계를 보면 오후 6시 40분. 식탁에 앉아 멍하니 국을 휘젓다가 스스로에게 물어본다. 하루 종일 한 게 뭐였지?
출근하던 시절엔 1분 1초가 소중했다. 눈 뜨면 회의 준비, 메일 확인, 전화 응대… 그 바쁜 하루가 이제는 텅 빈 하루로 바뀌었다. 퇴직한 지 7개월. 시간은 넘치는데, 정작 할 일은 없다.
시작은 늘 ‘아침 산책’
아침 7시에 일어나 운동화를 신고 동네를 걷는다. “규칙적인 생활을 해야 한다”는 누군가의 말을 따라보지만 산책 도중 자꾸 멈춰선다. ‘어디 가야 하지? 어디까지 걸어야 하지?’ 결국 편의점 들러 커피 하나 사 들고 집에 돌아온다.
산책이 끝나면 TV 리모컨을 든다. 홈쇼핑, 뉴스, 아침 드라마… **소리가 나고 있지만 머릿속은 멍하다.** “내가 이 시간에 이렇게 TV를 보고 있을 줄은 몰랐지.” 무의식 중에 혼잣말이 튀어나온다.
가장 바쁜 시간은 점심
오전 11시부터 점심을 뭘 먹을지 고민하기 시작한다. 예전 같으면 점심시간 1시간도 아까워서 허겁지겁 먹던 내가, 지금은 김치찌개 하나 끓이는 데 30분을 쓴다.
먹고 나면 다시 멍. **인터넷 기사 하나 읽다가 눕고**, 스마트폰 보다가 깜빡 잠이 든다. 눈 뜨면 벌써 오후 3시. “어? 또 하루가 다 갔네.”
시간은 있는데, 의미는 없다
시간이 많아지면 뭔가 새로운 걸 할 수 있을 줄 알았다. 책도 읽고, 그림도 그리고, 동네 봉사도 해보자 했는데 막상 시간이 생기니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. 이유는 간단하다. **의욕이 없다.**
“나만 이런가?” 하고 유튜브를 찾아보면 비슷한 나이, 비슷한 상황의 사람들 이야기가 넘친다. 그래서 위로는 되지만, 또 그만큼 씁쓸하다. 퇴직 후, 모두가 멍한 시간을 견디고 있는 거구나.
그래도 하루를 마무리하는 방법
저녁에는 거실 등을 은은하게 켜두고 아내가 건네준 귤 하나 까먹으며 조용히 라디오를 튼다. 뉴스 대신 음악이 흐르면, 마음도 조금은 부드러워진다.
“오늘 하루 뭐 했냐고?” 아무 것도 안 했지만, 아무 일도 없었던 오늘이 어쩌면 가장 평온한 하루였는지도 모른다.
그렇게 혼잣말하며, 내일도 또다시 반복될 “하루 종일 뭐 했지?”를 담담히 받아들인다.
마무리하며
퇴직 후의 삶은 예상보다 조용하다. 그리고 그 조용함이 처음엔 불안하고 낯설지만, **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진다.**
‘오늘도 무사히’라는 말이 이제는 제일 위로가 되는 인사말이 되었다. 오늘도, 큰일은 없었고, 나름 괜찮았다. 그러면 된 거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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